회상2

지크프리트&칼리오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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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의 만남에서 이어진 과거의 기억. 기사의 머릿속에 자연스레 꼬리를 문 생각이 어느 한 지점에 멈춰 섰다. 만약이라는 가정. 만일 그들이 무사했다면, 그래서 그 아이도 나이를 더할 수 있었다면. 미처 듣지 못한 아이의 꿈 역시 기사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른 꿈을 가지게 되었을지도.

하지만 모든 건 지나간 일이다. 그가 가볍게 숨을 내쉬고 시야로 주의를 돌리자 푸른 하늘 아래로 평온한 일상의 풍경이 계속되고 있었다. 포석이 깔린 잘 정비된 길을 따라 발착장을 오가는 이들과 그들의 활기 같은 것들. 이 마을은 분명 좋은 삶의 터전일 것이다.

“용살자 씨~☆ 여기여기!”

문득 발랄한 목소리가 지크프리트를 향했다. 고개를 돌린 방향에는 화사한 금발 소녀와 말뚝이 꽂힌 커다란 뱀이라는 기묘한 일행이 손을 흔들고 있다. 정확히는 소녀가 손을 흔드는 뒤로 푸른 뱀의 반투명한 꼬리가 하늘거리고 있었는데, 얌전히 주인을 뒤따르는 뱀의 입에는 상당한 크기의 짐이 물려있어 신비에 소박함을 더했다.

“칼리오스트로 공.”

조각해낸 듯한 소녀의 완벽한 미소는 분명 주위의 시선을 붙잡아둘 만큼 매력적이다. 그러나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사역마의 존재감에 사람들은 경탄이 아닌 경악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다행히 저 연금술사의 당당한 태도 덕인지, 또는 사역마의 생물 같지 않은 분위기 덕인지 큰 소동으로 이어질 기색은 없었다.

“조달품인가? 이 정도 양이라면 동행하는 게 좋았겠군.”

“용살자 씨도 참, 금방 어디로 휙 사라져버릴 거면서요~?”

소녀의 꾸며낸 투정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손에 들린 물건을 대신 들겠다는 제안에 그녀는 가볍게 사양의 뜻을 표했다. 섬세한 취급이 필요한 시약이라는 모양이었다.

“뭐어, 저것도 개인적인 물건이다. 헐값에 팔리고 있는 좋은 재료를 발견해서 말이지.”

뱀에게 물려있는 짐을 자랑스레 눈짓하며 씩 웃어 보이는 소녀의 얼굴은 어느새 말투만큼이나 표변해있다. 그 표정은 사악하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지만 그럭저럭 오랜 동료로 지내온 지크프리트에게는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뱀의 움직임에 따라 울리는 둔탁한 절그럭 소리를 그는 마물의 뼛조각으로 짐작했는데, 이렇게 칼리오스트로가 스스로 조달하는 것 외에도 종종 단장이 산더미 같은 의뢰의 부산물을 연금공방으로 옮기곤 했다. 연금술이란 여러모로 쉬운 일이 아님이 분명하다.

“흥, 어디, 웬일로 죽상을 하고 있나 봤더니 그렇지도 않은가.”

짧은 잡담을 나누며 걷는 사이 기사의 얼굴을 올려다보는가 싶던 소녀가 심드렁하게 내뱉는다. 잠시 그 뜻을 헤아려본 지크프리트는 가볍게 반문으로 응수했다.

“흠. 걱정을 끼쳤나?”

“하, 징그럽게. 그런 소리는 진짜 걱정할 애송이들한테나 하시지.”

질색하는 얼굴을 보이는 연금술사에게 기사는 짧게 웃어보였다. 그녀에게는 거의 모든 단원이 애송이나 다름없으니 아무런 특정이 되지 않지만, 지크프리트는 그를 걱정할만한 단원의 얼굴을 몇 명인가 떠올릴 수 있었다.

“후, 명심하지. 방금은 생각할 거리가 있었을 뿐이다만.”

“흐응.”

“옛 지인을 만났다.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던 참에 나도 같은 말을 들었지.”

“그래서 답지 않게 감상적이 되셨다 이건가.”

“감상적, 이라.”

그 말대로 좀처럼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에 지크프리트는 조금 전의 기억을 곱씹었다. 그의 마음에 걸린 건 변했다는 사실이 아닌 ‘변할 수 없게 된’ 이들이다. 그러니 더욱이 그에게 감상에 빠질 자격은 없는 듯 했다.

“귀공을 먼저 마주쳐서 다행이로군.”

“하늘 제일의 미소녀를 앞에 두고 당연한 소릴.”

서로의 솔직한 심경을 입에 담으며 두 사람은 부두와의 연결다리를 건넌다. 출항 전의 점검으로 분주한 갑판에서 누군가 인사와 함께 도움을 청하고, 지크프리트는 기꺼이 그 목소리에 응했다. 그것이 지금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