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지크프리트&옛 지인(모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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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프리트…… 단장님?”

물자를 보급하기 위해 들린 마을에서의 일이었다. 기공정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거리를 돌아보던 지크프리트에게 어딘가 귀에 익은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오랫동안 자신을 향하지 않았던 호칭과 함께 떠오른 과거의 기억. 마주한 얼굴은 기억 속 모습보다 관록이 붙어있다. 하지만 그는 어렵지 않게 눈 앞의 사내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브리안인가?”

“기억해주셨군요?! 그, 정말이지……. 오랜만입니다, 단장님.”

“잊을 리가 있겠나. 훈련 때 검을 잃어버린 소동도 있었지.”

“아니, 그런 것까지 기억하시다뇨……. 하하.”

멋쩍게 웃는 휴먼 남성은 왕립기사단부터 흑룡기사단 초기 시절을 함께한 부하였다. 성실하지만 무언가를 베는 데에 망설임이 있었고, 자의보다는 귀족 집안의 사정으로 기사단에 입단했던 그는 몇 번인가의 출전 이후 스스로 퇴단의 뜻을 밝혔다. 명예롭다 말하기 어려울지언정 기사단과 그 자신 모두를 위한 일이었지만 이후 부모와의 갈등 끝에 페드라헤를 떠났다는 소식이 지크프리트가 전해 들은 마지막이었다.

“후후, 물론 다른 일도 기억하고 있다.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군.”

“단장님이야말로……, 페드라헤에서, 많은 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짧은 침묵의 사이 옛 부하는 어렵게 뗀 입으로도 쉽게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겨우 언어로 내뱉어진 말은 짧지만 무겁다. 충성을 맹세했던 주군의 죽음과 대역죄인으로서의 세월. 어쩌면 그 외에도 남자는 한때 지크프리트를 향했던 자신의 배신감이나 적의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명을 벗은 이후로 기사는 타인의 복잡한 심경을 여러 차례 마주했지만, 잘못은 그들에게 있지 않다. 따라서 일말의 씁쓸함이 있을지언정 지크프리트는 그들의 태도를 개의치 않았다.

“이제는 전부 지나간 일이다. 네가 마음 쓸 필요는 없지.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 후로 괴로운 일만이 있지는 않았다.”

사내는 조용히 미소 짓는 옛 상사를 응시하며 천천히 두 눈을 깜빡였다.

“……그렇, 습니까.”

“그리고 나는 이제 기사단장이 아니다. 그러니 그냥 지크프리트라 부르는 게 맞지 않겠나?”

옛 부하는 갑작스러운 호칭의 변화에 난색을 표했지만 결국 설득을 받아들였다. 신세를 지고 있는 기공단에서 누군가 단장을 찾을 때에 반응해버리는 건 곤란하다는 농담에 꽤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 것도 같지만 지크프리트는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사람의 왕래가 적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 짧게 나눈 근황에서 지크프리트는 그가 상단에서 일하고 있으며 번듯한 가정을 꾸렸음을 들었다. 잠들기 전 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기사를 동경하던 아이가 지금은 진지하게 기공사를 꿈꾸고 있다던가. 브리안은 싸움에 맞지 않는 그가 피했던 길을 가려는 아이를 걱정하면서도 내심 흐뭇해하는 모습이었다. 대화의 사이사이 이전과 다른 활기가 엿보이는 사내에게 지크프리트는 진심이 담긴 축하의 말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많이 변하셨군요. 아, 다른 얘기가 아니라, 그. 뭐라고 할지. 좋은 쪽으로 말이죠.”

“그런가. 이렇게 아버지가 된 네 모습도 마찬가지겠지.”

변했다, 라는 말을 곱씹으면서도 지크프리트는 자신의 무엇이 변했는지 굳이 캐묻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광장에서 시계탑의 종소리가 들려온다. 의뢰 장소로 향하던 중 잠깐의 물자 보급을 위해 들린 섬이었기에 기공단은 곧 이곳을 떠날 예정이었다. 옛 상사에게 저녁을 대접하려던 상인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지크프리트는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에 이 주변을 들렸을 때는 꼭 여기…… 이곳들을 이용해주십시오. 제 이름을 말해주시고요.”

자신과 연이 있는 상점이며 대장간의 목록을 적어 쥐어주는 사내의 목소리에는 뿌듯함이 담겨있다. 기사가 감사를 표하자 쑥스럽게 웃어보이는 그는 분명 이전에 본 적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발을 뗀지 오래되지 않아 어색하게 지크프리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본 곳에는 사내와 그를 어렴풋이 닮은 한 소년의 모습이 있다. 지크프리트는 어리둥절하게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곤 자신의 돌아갈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