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나눴다고…….”
지크프리트는 지금 들은 것과 비슷한 사례를 알고 있다. 전에 몸담았던 기공단의 단장과 루리아가 ‘일심동체’로 서로에게서 멀어질 수 없게 된 것. 그만큼 죽음에 임박한 이를 하늘로 되돌리는 것은 큰 대가를 요한다. 살아나는 쪽이나 살리는 쪽이 어지간한 괴물이 아니고서야. 염제라 불리는 이는 그가 소중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치렀던 대가를 담담히 설명했다.
“라모락 형님의 마법이었다. 자신의 생명 절반을 아글로베일 형님과 나눌 각오로……. 그걸 두고 볼 수는 없었지.”
“……과연. 후회는 없는 거군.”
“그래. 기회가 주어졌고, 또 성공할 수 있었다는 데에 감사할 따름이다.”
어떤 때에도 이 불꽃은 올곧게 빛난다. 그것이 꺼지기 직전의 위태로운 모습일지라도.
지크프리트는 퍼시벌의 의지를 존중했고 또 마음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면 이 목숨 같은 것은 얼마든지 쪼개어 사용했으리라. 그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자신의 옛 제자이며 동료를 늘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 사건이 자신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다고 퍼시벌은 덧붙였다. 그저 인사치레와도 같이 느껴지는 말은 지크프리트에게 그저 약간의 씁쓸함을 더했다.
“그렇군. 하지만 어째서 내게 그 일을 말해준 거지?”
“후후, 어째서일까.”
퍼시벌은 짧은 웃음 뒤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평온을 기원하는 문양이 수 놓인 이불 위로 포개진 그의 두 손이 서로를 움켜쥐었다가 다시 느슨해지기까지, 지크프리트는 가만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네 말대로 내게 후회가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지금이 나의 마지막이라면 이것마저 나의 선택이니까.”
쇠약해진 육체에 꺾이지 않은 마음이 눈빛과 목소리에 깃들어 전해진다. 생의 끝자락을 바라보면서도 의연한 퍼시벌의 태도는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 되리라는 예감이 되어 지크프리트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함께 모셨던 옛 주군보다 젊은 나이. 아직 이뤄야 할 것이 많은 이때 일국의 왕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쓰러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뒤로 처음 얼굴을 마주한 퍼시벌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이것이 그가 생명을 내놓았던 대가라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에 반해 전혀 변치 않은 자신을, 지크프리트는 그 언제보다도 껄끄럽게 느꼈다. 그렇다고 해서 바뀔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잠시 후 기사가 어렵게 뗀 입에서는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부터 생각했다. 네게는 배웅받는 쪽이 되고 싶었지.”
“호오. 그 영광은 내 것이 되겠군…….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언제부터, 어째서 가지게 된 바람인가를 떠올린 적은 없었다. 그러나 대답은 어렵지 않다.
“네가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지도. 내가 멈춰 선 뒤에도 네 길이 계속해서 펼쳐져 있다면 그건 내게 분명 기쁜 일이겠지.”
퍼시벌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자신의 여정에서 몇 번이고 등을 밀어준 사람의 말이다. 내려놓았다고 생각한 아쉬움이 다시금 떠올라 마음을 흔들지만, 그것마저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지금도 나를 그렇게 봐주는 건가.”
“그동안 네가 변치 않았기 때문이겠지.”
우연히도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희미한 추억은 입장과 시선의 차이를 더해 이미 서로 다른 기억이 되어있다. 어쨌거나, 이후로 이어진 날들 속에는 짧게나마 같은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던 시간도 있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 고맙다. 지크프리트.”
“……나는.”
드물게도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는 옛 연인의 이어지는 말을 퍼시벌은 평온한 미소로 기다렸다.
“무엇보다도 너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 반대의 입장도 마찬가지라는 걸, 그리고 언젠가 맞이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그가 모를 리는 없다. 그렇기에 퍼시벌은 입가에서 미소를 거두지 않을 수 있었다.
“네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를 알고 있다. 다행인 일이지.”
그는 슬퍼하지 말라는 말 대신 상실을 이겨내리라는 믿음을 택했다. 어쩌면 오만하게조차 들리는 그 말에 조금은 놀란 듯한 쓴웃음이 왕을 향했다.
“지금의 널 당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군.”
미약한 웃음이 화려하게 꾸며진 방을 채웠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그것이 끝으로, 두 사람은 잠시간 즐겁고 괴로웠던 날들의 추억담을 나누었다. 한동안 앞으로 향하기 위해서만 뒤를 돌아보았던 이들에게 실로 오랜만에 찾아온 평온한 휴식의 시간이었다.
기사단. 고국. 동료. 전쟁. 강대한 존재. 그들이 아꼈던 것. 잃어버린 것. 일궈낸 것.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만 같은 담소의 끝에 왕의 측근이 시간을 알려올 때까지 그들은 언제부턴가 손을 맞잡고 있었다.
약간의 미련을 남긴 이별의 때. 기사는 왕의 쾌유와 나라의 번성을, 왕은 기사의 앞길에 평온과 무운을 기원했다. 변하거나, 변하지 않거나, 멈춰서거나, 나아가거나. 다른 길에 서 있는 그들이 서로의 가장 사랑한 모습에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었다.